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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아일랜드의 경제 드라마' 한국의 기적을 넘어선 나라

by 방구석열공 2023. 2. 11.

 

한강의 기적을 넘어선 나라, 아일랜드

199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일랜드가 작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됐다. 단 30년 만의 압축성장으로 한강의 기적보다 더 빠른 국가적 변신인 셈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상으로는 13만1034달러(추정치). 이는 세계 3위, 유럽(EU) 2위의 기록이다. 더군다나 이 실적은 세계 경제가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침체를 겪던 2021~2022년에 성취한 것이어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22년 1인당 GDP 13만달러

2018년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8.3%였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2019년에는 성장률 5.5%를, 모든 국가들이 역성장을 하던 2020년마저 무려 3.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아일랜드의 압축적 급성장은 서유럽 기준으로는 정말 특이한 경우이고, 유럽 최고의 빈국이던 스위스가 최상위 부국이 된 것과도 비교된다.
어떻게 유럽의 ‘가난한 늙은 여인(The Poor Old Woman)’이라고 동정받던 아일랜드가 단 30년 만에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켈트족 호랑이’라는 뜻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에 빗댄말)’를 거쳐 세계 최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을까.

 

1인당 GDP 영국의 2.34배

1990년부터 2003년까지 GDP는 500억달러에서 1490억달러로 3배가, 수출액은 250억달러에서 975억달러로 거의 4배가 늘었다. 반대로 국가채무는 GDP의 96%에서 33%로 거의 3분의1로 줄었다. 동시에 고용인원은 50%가 늘어 190만명이 되면서 실업률이 12.9%에서 4.8%로 떨어져 거의 완전고용을 이루었다. 아일랜드의 2022년 1인당 GDP 예상치는 13만1034달러. 

 

 

 

아일랜드의 성장비결

교육이다. 1995년이 되면서 아일랜드 대학생과 졸업생 비율이 전체 인구의 48%가 될 정도로 늘어났다.  1960년 2만명이던 것이 1995년에는 6배가 늘어 무려 11만2000여명이 대학을 다니게 됐다는 얘기다. 특히 1995년 아일랜드 대학생 중 과학 관련 전공을 하는 비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결국 이런 장기투자가 아일랜드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다음은 EU와 미국의 투자였다. EU 회사들은 아일랜드의 풍부하고 저렴한 인적 자원을 이용하려고 투자를 했다. 특히 독일이 가장 큰 투자자였다. EU는 14억달러를 원조해 아일랜드가 도로, 항만, 철도 등의 사회간접자본을 개발하게 만들었다. 영국인 다음으로 많은 미국 이민의 역사를 가진 덕분에 미국의 투자도 컸다. 

세 번째로는 아일랜드 정부의 개방 정책이다. 1999년 OECD 기준으로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경제활동 자유 수치가 3위였다. 1위 홍콩, 2위 싱가포르 뒤를 이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던 셈이다. 
거기에 더해 정부가 앞장서 1987년 구성한 ‘사회적협력증진책(Social Partnership)’이 해외기업들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부·기업·노동조합 삼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원활한 임금 조정과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 여야 대표들도 협의체의 일원으로 참가해 거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네 번째로는 2003년부터 법인세가 12.5%로 인하됐다는 점이다. 미국 회사들로서는 당시 4억7000만명의 EU 시장에 관세 없이 제품 판매를 할 수 있게 된 아일랜드가 법인세까지 EU 최저로 낮춰버리니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국제적인 제약회사 10개 중 9개가 아일랜드에 공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 미국의 전체 EU 투자 중 4분의1이 아일랜드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당시 아일랜드의 소프트웨어 수출은 미국을 앞섰다. 당시 아일랜드의 인구는 400만여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외국인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주역은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 Ireland)이었다. 1969년에 개설된 IDA는 시작부터 미국 회사들을 공략했다. 그 결과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제약, 전자, 의료기기 등의 제조 회사 중 아일랜드에 생산기지를 가지지 않은 회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IDA의 투자자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다.

 

한국보다 10년 늦게 들이닥친 외환위기

켈틱 타이거의 기적이 현재까지 쭉 이어진 것만은 아니다. 정말 극적인 추락을 했다가 부활했다. 10년 이상 호황을 누리면서 승승장구하던 아일랜드도 호황의 절정인 2007년, 한국보다 딱 10년이 늦게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경기를 살리려고 무조건 건설 경기를 불러일으킨 정부, 자신의 지역구에 보다 많은 주택개발을 유치하려고 날뛴 정치인, 무분별하게 주택구입자금을 융자해 준 은행, 앞뒤 생각하지 않고 주택구입 붐을 일으킨 탐욕스러운 주택개발회사, 그리고 무조건 집값이 오른다는 착각에 빠져 정말 묻지마 주택 구입을 한 구매자들이 합작으로 일으킨 초대형 사고였다. 이자가 오르면 당장 터질 부동산 거품의 경고를 애써 무시한 결과였다. 

비극적 사태가 시작된 2008년부터 사태가 진정된 2011년까지 3년 동안 아일랜드 국가수입은 17%가 하강했고, 실업률은 20%를 넘어섰을 때도 있었다. 2010년 아일랜드 정부 재정적자가 14.3%로 그리스보다 높았다. 당시 아일랜드 은행들은 960억달러(약 122조원)의 악성대출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당시 아일랜드 GDP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해서 아일랜드는 유로존에서 가장 먼저 불황에 들어선 국가가 되었다. 팔리지 않는 주택과 상환금을 못 내 은행에 뺏긴 빈집들이 아일랜드 도처에 즐비했다. 당시 아일랜드 언론은 이를 유령주택단지(Ghost Estate)라고 불렀다. 아일랜드 전국적으로 600여개의 단지에 30만채가 비어 있었다. 17만명이 대출보다 낮은 가격으로 떨어진 부동산을 안고 살았다. 당시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네 번째 높은 평균 실업률(13.4%)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43만2500명이 실업수당을 받고 있었다. 30세 이하 노동가능인구 3명 중 1명이 실업자였다.

 

 

 

 

‘가학적 긴축재정’으로 살아나다

아일랜드는 11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고 유럽중앙은행과 IMF에 국가재정을 넘겨줬다. 10년 전인 1997년 한국이 받은 IMF 구제금융 20억달러와 비교하면 얼마나 천문학적인 금액인지 알 수 있다. IMF의 강요에 의해 당연히 아일랜드는 사회복지 축소, 임금동결, 세금인상, 이자율 인상 같은 극단의 긴축재정 조치를 강요받았고, 아일랜드인들과 기업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당시 뼈를 깎는 긴축재정을 아일랜드인들은 ‘가학적(masochistic) 긴축재정’이라고 불렀다. 

유럽의 어떤 국가도 아일랜드 같은 드라마틱한 경제부흥, 침체, 회복을 겪은 적이 없다. 켈틱 타이거는 이렇게 해서 이제는 켈틱 불사조(Cetic Phoenix)라고도 불린다. 2014년 독일 재무장관은 “아일랜드의 부활에 질투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덕분에 유로화의 안정에 아일랜드가 기여한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과함이 없다”고도 했다.

이렇게 해서 아일랜드는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었고, 자신들의 역사에서도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 유수의 거대테크 회사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중 구글, 애플, 페이스북의 유럽 본사가 아일랜드에 있는 걸로 봐서 아일랜드의 경제는 상당 기간 강할 듯하다. 

 

 

출처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58 

 

꼴찌에서 정상으로... '아일랜드의 경제 드라마' - 주간조선

199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일랜드가 작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됐다. 단 30년 만의 압축성장으로 한강의 기적보다 더 빠른 국가적 변신인 셈이다. 2022년 아일랜드의 1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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